보이스피싱 조직에서 돈을 전달하거나 수거한 사람은 자신이 단순히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달책이나 수거책의 역할만으로 방조범에 그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범행에 어느 정도 관여했고, 사기 범행에 대한 인식과 의사가 있었는지에 따라 공동정범과 방조범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형법상 공동정범은 범죄 실행 과정에서 다른 사람과 역할을 나누고, 범행을 기능적으로 지배했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말합니다. 공동정범으로 인정되면 전체 범행에 대해 정범과 동일한 형으로 처벌받습니다. 방조범은 정범의 범행을 알면서도 이를 돕는 정도에 그친 경우를 의미하며, 법률상 형이 반드시 감경된다는 점에서 공동정범과 처벌 수위가 다릅니다. 단순 가담자라도 편취 과정의 일부를 분담하고, 전체 범행에 대한 공동가공의 의사와 기능적 행위지배가 인정되면 사기죄의 공동정범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최근 대법원은 현금수거책이 보이스피싱 조직과 공모해 범죄에 가담한 사건에서 원심의 무죄 판단을 파기하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돌려보냈습니다. 대법원은 사기의 공모공동정범이 범행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고 해도 공모관계를 부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현금수거책의 공모 사실이나 범의는 다른 공범과 순차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뜻이 통하고, 범죄에 기여하며, 범죄를 실현하려는 의사가 결합된 상태에서 피해자의 현금을 수거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판시했습니다.
따라서 조직의 전체 범행 방법이나 구체적인 내용을 몰랐다는 사정만으로 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다른 판결에서는 미필적 고의를 판단할 때 채용 절차의 비정상성, 업무 방식의 이례성, 보수 지급 구조, 피고인의 경험과 연령을 종합해야 한다는 기준도 제시했습니다. 법원은 당사자가 범죄를 실제로 알았는지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업무를 시작하고 수행하는 과정에서 범죄 가능성을 알 수 있었는지도 함께 살핍니다.
면접 없이 채용됐는지, 비대면으로만 업무 지시를 받았는지, 시세보다 지나치게 높은 보수를 받았는지 등은 범죄 인식을 판단하는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사기죄는 형법상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공동정범으로 인정되면 편취 금액 전체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될 수 있어, 방조범으로 인정되는 경우와 형량 차이가 커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어떤 경위로 일을 시작했는지, 업무를 수행하면서 어떤 의심을 가질 만한 정황이 있었는지를 초기부터 구체적으로 정리해야 합니다.
구직 사이트에서 물류 관련 업무라는 안내를 받고 일을 시작했지만, 나중에 자신이 수거한 돈이 보이스피싱 피해금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례가 있었습니다. 수사 초기에는 검찰이 공동정범으로 기소할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업무 지시 방식과 채용 과정의 정황을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실제 인식 가능성이 낮았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제출했습니다. 그 결과 재판 과정에서 공동정범이 아닌 방조범으로 죄명이 정리되었고, 집행유예로 사건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는 같은 역할로 보이는 사건이라도 구체적인 사실관계와 초기 대응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한 사례입니다.
보이스피싱 전달책이나 수거책 사건은 겉으로 드러난 역할만으로 결론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대법원의 판단 기준이 적용되더라도 모든 사건이 동일하게 공동정범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며, 채용 경위와 지시 내용, 보수 구조, 업무 당시의 인식 가능성을 개별적으로 살펴야 합니다. 수사를 받게 됐다면 기억에 의존해 단편적으로 설명하기보다 관련 대화와 구직 자료, 업무 지시 내용을 보존하고 자신의 역할과 인식 정도를 차분히 정리해 대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